4. 창조성의 근원
창조성의 근원
그렇다면 앞에서 ‘근원 에너지’라고 명명한 이 에너지는 뭘까? 대체 이 에너지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오래 숨죽여 있어도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아 결국 터져 나왔을까? 이 에너지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많은 창조적 활동을 하도록 이끌었을까? 이 에너지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 냈을까? 다음의 서술 역시 앞서 언급한 '폭발'의 경험에 따라 직관적으로 판단한 내용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 근원 에너지는 우리 존재의 가장 근원적 차원에 자리한 가장 순전하면서도 무한한 천연의 자원이다. 끝도 없이 흘러나오는 창조성의 원천이다. 어쩌면 창조성 자체가 이 에너지일지도 모른다. 이는 또한 우리 개별 개체를 넘어서는 곳에서 출발하는 그 무엇이다. ‘궁극의 사랑’(데이비드 홉킨스 박사)으로 일컬어지는 에너지 혹은 '합일 의식'(켄 윌버) 속에서 발현되는 마음이다. 혹은 그런 차원에 속하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끝이 없다. (본인의 현재 존재 상태는 이러한 궁극의 상태와는 거리가 한참 있다. 그래서 이는 확정적인 경험에서 나온 확신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측면을 통해 현시점에서 내린 결론이다. 또한, 이러한 차원에 속하는 에너지의 한끝을 '폭발'의 경험 덕에 잠시나마 경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의 근원에서 출발한 이 에너지는 우리 각각을 통과하면서 개별적 특성을 띠게 된다. 즉, 각 개체가 이 에너지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수용하고 통하도록 허용하면서부터 그 본질은 개별화된다. 본디 형체도 색깔도 그 무엇도 없던, 에너지 그 자체로만 존재하던 것이 우리 각각의 의식을 통과하며 구체화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때부터 이 에너지는 에너지를 통과시킨 그 개체와 연결된 개성을 띠기 시작한다. 고유한 에너지의 특성을 이루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도 여전히 이것은 에너지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개별적 특성을 지닌 에너지일 뿐이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하는 지점은 즉, 한 발짝 더 ‘무거워’지는 지점은(‘무겁다’는 것은 가장 가벼운 상태인 에너지와 가장 무거운 상태인 현실적 결과물 사이에서의 방향성을 뜻한다) 어떤 식의 영감이든, 깨달음이든, 혹은 상(image)이든 그 어떤 형태로 우리의 의식 안에 분명히 떠오르거나 드러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 각각의 특성에 따른 구체적인 행동이나 사고 및 언어와 같은 일종의 매개체를 통해 더욱 구체화할 때 즉, 한 단계 더 무거워지는 쪽으로 나아갈 때 드디어 현실에 형상화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창조적인 혹은 새로운 혹은 자신만의 글로, 수학 공식으로, 그림으로, 발명품으로 혹은 그 무엇으로 세상에 분명한 형체를 갖추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개별적 특성을 이 에너지와 함께, 이 에너지를 통해 실현하는 것이다. 이때 우리는 이 자체로 다름을, 차이를, 창조성을 꽃 피운다. 이 자체로 자아실현을 이룬다. 그 이후에 얼마큼의 완성도로 그 일을 마무리하느냐는 이와는 별개의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는 이 에너지가 그 자체로 일정한 방향성을 내재함을 의미한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탄생시키도록 하는, 전진시키는 방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즉, 이 에너지가 자연스레 흐르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다면 일은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우리가 사고하거나, 행동하거나, 표현하거나 만들게 한다. 하게 한다. 이것이 마법처럼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억지로 애를 쓰거나 힘을 짜내거나 과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는 뜻이다. 마치 파도가 우리를 실어 나를 때 그 파도를 잘 타면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폭발' 과정 당시 나는 아무런 애를 쓰지도 않고도 쏟아지던 에너지를 따라, 그 에너지를 타고 끊임없이 창작하기만 하면 되었다. 게으름이란 게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고, 몇 날 며칠을 작업해도 지치기는커녕 계속 더 많은 것이 탄력을 받으며 생산되었다. 완전히 몰입되어 일상적 에너지 흐름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였고, 다른 식으로 작용하는 에너지가 개입될 여지가 없는, 질적 순도가 거의 최고조에 이른 상태였다. 물론, 내 경우는 이러한 에너지의 흐름이 워낙 강렬한 방식으로 찾아왔기에, 많은 양의 에너지가 쏟아지듯이 한 번에 분출되었기에, 이러한 특성을 매우 분명하게 경험한 것은 사실이었다. (사실, 이 덕분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 폭발성 덕에 이 에너지의 실재, 그 흐름과 방향성, 기능과 역할을 매우 선명하고 또렷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즉, 그 에너지의 흐름이 고요하고 순차적이며 자연스러운 정도로 일어나든, 일상적으로 작게 일어나든, 그만의 방향성은 존재하고, 이것은 우리를 어떤 식으로든 나아가게 한다. (나는 '폭발'의 경험 이후 정착된, 훨씬 선선한 흐름 속에서, 매일의 일상 속에서 이를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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