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가 그간 놓치고 있던 양질의 예술적 창조성
우리가 그간 놓치고 있던 양질의 예술적 창조성
이 연구 에세이의 본격적인 내용은 이 연구를 시작할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준 어떤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다음은 그 경험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는 앞선 글에 밝혔듯이 꽤 오랫동안 지속적인 개인적 의식 성장 과정을 거쳤다. 그 의식 성장이란 요즘 흔히 일컬어지는 ‘정화 과정’ 혹은 ‘치유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런데 그 여정에서 일관적으로 반복되며 나타나는 패턴이 있었다. 내 존재 상태가 확장 혹은 성장할 때마다 그 성장과 맞물려 일종의 순환처럼 드러나는 현상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에너지 분출로서 무의식 혹은 잠재의식 속 어딘가에 억눌려 있거나, 갇혀 있거나, 숨겨져 있던 그 무엇이 치유나 성장이 일어난 후 의식 상태 위로 떠오르고 드러나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를 특별하게 주목하지는 않았다. 이런 것을 이론 및 원리적으로 언급한 책 및 가르침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특별할 것이 없었다. 모두가 겪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또한, 의식적 수준에서 그 연유를 추적해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이 드러나는 형태 또한 점진적이고 대수롭지 않은 정도의 수준으로, ‘용기’,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욕구’, ‘다양한 새로운 아이디어’ 등 평이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러한 원리가 실제 내 몸을 통해 체험되는 것은 그 자체로 참 신기했다. 또한, 주기적으로 일어난다는 점이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어느샌가부터 그 분출 정도가 세다고 느낄만한 주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점점 이게 뭔가 의구심이 일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이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만큼의 결정적 경험이 찾아와 버렸다. 가희 에너지의 ‘폭발’이라고 칭할만한 에너지의 순환을 경험한 것이다. 그간의 에너지 분출과는 규모 면에서나 그것이 드러나는 방식 및 형태 면에서도 확연히 다른 에너지 폭발이었다. 내 안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한꺼번에 물밀듯이 쏟아졌고,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만들려 했으며, 실제로 만들어 냈다. 실로 창조성의 폭발이었다.
다음은 그 '폭발'의 경험을 짧게 추려본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라 이것을 어디까지 어떻게 풀어내는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 대한 부담도 있다. 하지만 논리적 맥락에서 꼭 필요한 부분만을 골라 이야기를 진행한다면 크게 무리가 없을 거라고 본다. 또한,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다소 극적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창조성의 성질을 연구하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 읽히기를 소망해 본다.
이 경험은 직접 뮤지컬을 만드는 기회를 우연히 얻게 된 데서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그 이전까지 내 예술 활동은 창작 작업이라기보다는 표현 작업에 더 가까웠다. 퍼포밍을 어떻게 더 잘할 수 있느냐에 포커스가 있었다. 그러다 시를, 가사를 쓰고 싶은 욕구가 일어났다. 나는 곧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시에서 멜로디가 보이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처음으로 노래 두어 곡이 만들어졌다(멜로디 수준에서). 동시에 잠을 자려는데 극의 어떤 장면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이게 다 뭔가 싶어 친구에게 상담을 해보았다. 그러자 친구는 국가 지원 사업에 지원해 보라는 권유를 해주었다. 나는 곧 별생각 없이 그 아이디어를 모두 모아 몇 곳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로 한 지원 사업에 발탁이 되어버렸다. 그 아이디어로 작은 뮤지컬을 직접 쓰고 만들어 공연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경험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로 시작한 일이었다. 담당 기관과 계약한 마감일 및 공연 날짜를 지키기 위해 극, 음악, 안무 등을 단기간에 완성해야 하는 꽤 강도 높은 상황이 연이어졌다. 글을 쓰고 음악을 쓰고 춤을 만들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창작 활동을 연달아했다. 당연히 어설프고 부족하고 서투른 면이야 다 읊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점은 어찌 되었든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예술 영역에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 안에 있는지도 몰랐던, 이전에는 인지조차 제대로 못 했던 욕구, 능력, 활동성이 현실 속에서 창작 활동으로 만나 꽃 피워지고 있었다. 나의 새로운 자아가 나날이 드러나고 있었다. 게다가 혼돈의 길목마다 적절한 사람과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 일이 진척되었다. 마치 누군가가 보호해 주는 것 같은, 내 등을 밀어주는 것 같은 시기였다. 신기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진짜 문제가 이 사업이 종료된 이후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단기간에 나의 새로운 면을 한꺼번에 알아버렸고, 이것이 내면의 무언가를 촉발했던 것 같다. 나도 모르는 내가 아주 많이 있었다는 게 꽤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때문에 방아쇠가 제대로 당겨져 버렸다. 곧 이 시기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이 느끼게 되었다. 동시에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 드는 묘한 불안감도 들었다. 거의 본능적으로, ‘한동안 나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차단해야 한다’는 일종의 보호 본능 같은, 의무감 같은 것이 솟아 올라왔다.
나는 이때부터 일종의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그것도 은밀히, 조심히 그렇게 했다. 그래야 정말 그 누구의 관심도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곧 글을 써야겠다는 욕구가 강하게 올라왔다. 그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랬다. 그 글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정확히 무엇을 쓸 계획도 없으면서 그냥 글이라고 느꼈다. 그것도 꽤 다급한 느낌이었다.
이때부터는 한마디로 닥치는 대로 써대기 시작했다. 일단 시작하자, 마치 댐의 둑이 무너진 것처럼 에너지가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미루어 두었던 어떤 것을 한꺼번에 해내려는 듯, 마치 내 작은 몸에 수천의 시공간을 통과시키려는 듯,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가 글로 토해져 나왔다. 어떤 글을 쓸지 혹은 어떻게 좋은 글을 쓸지 등에 대해 생각하고 계획하고 따질 겨를이 없었다. 당연히 완성도를 논할 수도 없었다. 말 그대로 그저 나오는 대로 써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과 상관없이 계속 썼고, 계절이 지나가는 것도 상관없이 계속 썼다. 계절이 지나 겨울 겉옷을 꺼내야 할 때 비로소 계절이 지나갔음을 알았다. 끼니를 챙겨 먹는 것도 귀찮아 입에 아무거나 집어넣었다. 당연히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보냈다. 불쑥불쑥 내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강렬한 내적 혁명에 그런 목소리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일단은 이 내면의 부름에 그저 머리를 조아리고 따라가는 게 옳은 일이라 느꼈다.
(그렇다고 이 과정에서 대단한 창작물이 나왔다고 오해 말라. 오히려 초보자의 습작 수준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이유를 개인적으로 이해한 바는 다른 글을 통해 다루겠다)
그렇게 거의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나갔다. 글과 관련된 에너지가 어느 정도 소진되자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음악을 써야겠다는 강렬한 목소리가 내면에서 솟구쳤다. TV를 보며 쉬는 데 정말 불현듯 갑자기 떠올랐다. 이번에도 꼭 그래야 한다는 강렬함이 함께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를 어이없게 느꼈다. 이게 왜 내게 말이 안 되는 생각이었냐면, 위에서 언급한 뮤지컬 덕분에 몇 곡을 써보기는 했으나, 그것이 난생처음 한 경험이었고, 그전에 작곡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이제 음악을 써볼까?’ 정도가 아니라 ‘내 음악을 써야겠어!’ 혹은 거의 ‘내 음악을 되찾아야 해!’와 같은 마음이 든다는 게 상식적 선에서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위 경험을 통해 나 또한 음악을 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내면의 무언가를 강하게 건드린 게 분명했다. 어쨌든 나는 이번에도 그런 나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스스로를 돕고 싶었고, 어차피 이 독특한 여정을 시작한 이상 계속 나아가고 싶었다. 워낙 음악적 토대가 없어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았다. 글과 달리, 음악은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하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냥 아무런 규칙도 없이, 내키는 대로 음악을 내뱉었다.
때로는 수많은 이미지가 불쑥불쑥 떠오르기도 했다. 꿈속에서건, 현실에서건 상관없이 떠올랐다. 선명한 것도, 불분명한 것도 있었고, 움직이는 것도, 멈춰있는 것도 있었다. 이 부분은 사실 이상한 부분이 더 많이 있지만, 굳이 여기에 다 설명할 필요는 없는 부분인 것 같다. 다만 혹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개인적으로 칼 융의 책이 위안이 되었고 (특히, 그의 무의식이 열려 한꺼번에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는 그의 경험 자체가), 김상운 작가님의 거울명상도 나를 큰 몫으로 지탱해 주었다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당시에 Frances E. Vaughan 교수님의 책 ‘Awakening Intuition’을 책을 읽은 직후여서 이 영향을 받은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다룬다)
어쨌든 총체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내 에너지가 글이든, 음악이든, 이미지이든 그 무엇으로라도 표현되고 구현되어 밖으로 나가려 아우성치던 시기였다. 그렇게 끊임없이 표현하고 구현해 내보내지 않으면 안 될 만큼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터져 나오던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도 내 에고는 그 에너지가 뭐를 하려는지 이름 붙이고 분류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려 열심이었지만(즉, 의식 상태가 사라지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다!) 그 에너지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나를 계속 밀어붙였다. 그 때문에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과 같은 신체적 증상도 더러 있었는데, 이는 신체가 그 에너지의 순환을 일상적 수준에서 감당하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인 듯했다. (신체적 증상에 대한 자세한 탐구는 추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그렇게 꽤 긴급했던 약 1년 정도의 집중적인 에너지 분출 과정이 끝나가자 점차 현실과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좋은 면으로는 이 결과물과 관련된 현실적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는 점이었고, 부정적인 면은 다시 강력해진 에고 덕에 이를 가지고 쓸데없는 시도와 조잡한 행동을 취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러는 와중에도 이 에너지는 이제는 좀 더 선선하고 완만한 흐름으로 계속해서 나를 흘러다녔다는 점이다. 즉, 조금은 더 완만한 정도로 에너지 분출 및 그에 따른 다양한 활동이 그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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